세상은 어느새 은밀한 기준을 하나씩 내놓고 있습니다

맛있는 것, 예쁜 것, 멋진 것, 보기 좋은 것반대로 못난 것, 보기 싫은 것, 맛없는 것 등의 기준이 공식처럼 일반화 되어 있죠. 

이 공식에 밀려난 자들을 우리는 열등인, ‘루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루저는 자신이 되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친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위에 말한 은밀한 기준에 조금씩 밀리다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되어 있는 것이바로 루저이죠. 그렇게 평범한 개인의 존재가 다수의 횡포에 의해 루저로 불리게 되는 불행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죠.


 


영화 뚱보가 세상을 지배한다의 제목은 그래서 더 특별합니다. 뚱뚱해서 루저가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해봤지만 이렇게 적극적인 제목은 처음인데요. 제목만 본다면 마치, 뚱보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펼쳐지는 새로운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그린 스토리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목은 그저 거대한 비유일 뿐이죠.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면 제목의 의미가 매우 잘 드러납니다




어쨌든 뚱보는 현대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부적응자, 루저, 심하게 말하면 외계인에 속합니다

이 외계인들은 조금은 끔찍한 첫 장면처럼 인간들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늘 괴로움과 분투하고 있는데요

영화는 이런 외계인들에게 비현실적인 희망대신 실질적이고 냉정한 시선을 보여줌으로써 조금 더 현실적입니다. 무작정 희망을 외치기보다는 뚱뚱한 트로이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뚱뚱한 트로이의 삶이 진짜 외계인의 삶일까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기도 하죠.

감독의 이름은 매튜 릴라드. 이름이 낯설 것입니다. 그럴 것이 그는 감독이 아닌 배우로 삶을 살던 인물이었쬬. <스크림>,<13고스트>등 흥행한 영화에도 꽤 출현한 배우로써, 그의 디렉터적인 면모가 발견된 건 비교적 최근입니다. 그럼에도 개성 있게 장면들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나름 나쁘지 않은 출발을 한 것 같네요. 아직 성가신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앞으로 그의 행보를 기대해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꽤 유명한 원작이 있습니다원작 제목도 영화 제목과 같죠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영화의 첫 장면은 매우 파격적입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던 뚱보 트로이가 갑자기 느닷없이 도로로 뛰어들어 달려오는 버스에 쾅, 부딪칩니다. 그리고 매우 비현실적으로 핏물이 사방에 튀기죠.

마치 토마토 축제의 일부를 연상시키는 장면인데, 이런 장면들에서 감독의 개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여간 이 장면은 현실이 아닌 트로이의 내면인 셈이죠. 이 후로도 트로이의 내면은 꾸준히 등장합니다

모든 여자를 성적으로만 생각하는 음흉한 상상들과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해하고 싶은 끔찍한 장면들이 화면에 펼쳐집니다

물론 그것들은 그저 상상일 뿐이죠. 하지만 이 첫 장면이 꽤 흥미롭다. 그 상상은 곧 실천으로 다시 이어지는데요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겨우 용기를 낸 첫 자살 실천이 마커스라는 퇴학당한 양아치 녀석 때문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이죠

이 장면은 가장 의미 있기도 합니다. 마지막 장면과 정확하게 대비되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목을 통한 작가의 의도를 말해주기 위한 복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 마커스의 행동은 트로이가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영화 말미에는 이 상황이 완전 반대가 되죠. 마약에 찌든 마커스를 트로이가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마커스가 원한 게 아니었죠. 그저 마커스 자신이 트로이를 구했듯 트로이가 역으로 마커스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뭐 상징적으로 보자면 그 장면은 일종의 구원으로도 해석해볼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마커스는 어떻게 보면 트로이가 갈망하고 있는 내면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 내면의 거울을 결국 자신 스스로가 구한 것이죠. 타인을 구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건 결국 스스로의 구원인 것입니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완전히 대비되는 마커스라는 인물의 심리와 트로이의 심리를 자꾸 비쳐주면서 진행됩니

억압을 표출하는 자유로운 영혼 마커스와 아버지에게 통제 당하는 트로이는 결국 스스로 봉합하고, 그 과정에서 그 방법을 나름대로 찾습니다

이게 영화의 핵심이며 제목 뚱보가 세상을 지배한다의 의도라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힐링이나 성장영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꽤 좋은 연출과 화법으로써 그 이상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뚱보가 아닐지라도 누구에게나 같은 아픔은 존재한다, 결국 그것을 이겨내느냐 못 이겨내느냐는 내면이 어떤 것을 지배하는 가에 따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죠. 그것을 확인시켜 주듯,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두 번이나 나오기도 합니다.

네가 원하면 있어!”

열등감에 쌓인 파도치는 청소년기의 고민을 안고 있다면 이 영화 한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요즘같이 따스한 봄에 잘 어울리는 멋진 영화 하나 소개와 리뷰 합니다.

개인적으로 하정우의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 담긴 영화이고요, 

칸의 여왕 전도연의 색다른 연기를 볼 수 있어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한국 멜로 영화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잘 만든 영화라는 평이 무색하게 

영화는 그 흔한 스킨쉽 하나 없는 이상한 멜로 영화입니다.

왜 이런 영화가 잘만든 멜로 영화가 되었을까요.

간단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한 감정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죠.





파격적인 장면은 없습니다. 이야기의 반전 역시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보다 감성적이고 떨림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을 온전히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영화 내용은 간단합니다희수(전도연)는 전 남친 병운(하정우)에게 오래 전 빌려 준 350만원을 받기 갑자기 나타납니

그리고 350만원을 다 받을 때까지 떠나지 않으며 그와 함께 돈을 받으러 하루 여행(?)을 다니는 그런 흔한 멜로 영화입니다.

보통 멜로 영화에 자주 나오는 공식이 서로 안티의 관계(불편하거나 싫어하는)에서 시작하여 점점 가까워지는 관계까 되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안티를 넘어 한때 격력하게 사랑했다 헤어진, 매우 불편한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로는 이혼 후 다시 만나며 둘의 감정선을 잘 보여준 연애시대라는 드라마가 떠오르네요.

또 두 남녀가 짧은 기간동안 함께 여행을 다니며 (어쩔 수 없이) 로맨스를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준 영화로는 맥라이언의 전성기 모습을 볼 수 있는

'프렌치키스'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1


영화에서 이야기 말고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배우 조합입니다. 밀양에서 열연을 펼쳐 칸의 여왕이 된 후 한국 최고의 여배우로 거듭난 전도연과 추격자의 섬뜩한 연기로 일약 스타가 되며 이제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하정우의 호흡은 그야 말로 '멋진 하루'를 진짜 멋진 영화로 만들기 충분합니다

이 멋진 두 배우는 한 때 애인사이였던 희수와 병운의 미묘한 감정선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잘날것 없지만 그래도 병운보다는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희수의 감정과 헤어진 그 1년 사이 산전수전 다 겪어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병운의 모습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답답하고 화가 날 정도로 잘 표현 되어 있죠





처음에는 애인 돈이나 떼어 먹고 사라진 양아치같은 병운이 끝에 가서는 인갑답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완벽한 하정우의 연기가 한 몫 했음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영화내내 짜증내고 냉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기적인 희수가 밉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그래도 이 영화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는) 전도연의 깔끔한 연기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봅니다.


빌린 돈을 받는 것이 영화의 큰 목표이지만, 사실 영화에서 350만원은 그냥 숫자일 뿐입니

그게 200이든 100이든 전혀 상관없어 보이죠. 다만 그 돈을 갚기 위해 하루 여행을 떠나는 둘의 감정이 중요한데요 정확히 말하면 영화는 희수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죠. 물론 병운의 감정이 아예 나오지 않는 건 아닙니. 학교에서 아이와 함께 껌을 뗴고 있는 희수를 보고 있는 장면,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희수의 눈물을 보고 어쩔 줄 모르는 장면 등 병운의 감점 역시 섬세하게 나오긴 합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희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죠. 하루동안 돈을 받아 가는 여행을 하면서 희수는 속물적이고 생각없다고 느꼈던 병운을 다시 보게 되죠. 그런데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몇 년을 사랑했고 가장 잘 이해했던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건, 결국 몇 년을 알아왔었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에 대해 진짜 아는 게 없었다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몇 년을 사랑했던 그 사람, 아니면 다 이해한다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는 그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진짜일까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이가 좋지 않거나 서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한번 그 사람을 보는 건 어떨까요?

이 봄에 정말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영화, 멋진하루 였습니다.







 


'충 (취미,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버워치 블랙워치 스킨  (1) 2017.04.19
위대한 레보스키로 본 코미디 정서!  (0) 2017.04.17
웃긴 카톡, 문자 모음!  (0) 2017.03.25
웃긴 짤 모음들  (0) 2017.03.24
오버워치 vansquad (반스쿼드)  (0) 2017.03.23

+ Recent posts